
미드소마 백일몽 같은 한낮의 공포, 이별과 상실 끝에서 피어난 컬트 공동체의 유혹
2019년 애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Midsommar)>는 가족 비극을 겪은 미국인 대학원생 대니가 남자친구와 친구들과 함께 스웨덴 외딴 마을 하르가(Hårga)의 하지 축제에 참여했다가, 백야의 햇빛 아래에서 점차 폭력적인 이교도 의식과 집단 광기에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포크 호러 영화입니다. 900만 달러 제작비로 전 세계 약 4,7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A24 상위 흥행작에 올랐고,플로렌스 퓨의 강렬한 연기와 “밝은 공포”라는 독특한 미장센으로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살육으로 끝난 가족 비극, 붕괴 직전의 연인이 선택한 스웨덴 여행
영화는 대니(플로렌스 퓨)가 조울증 기질이 있는 여동생의 불안한 메시지를 받고 불길함을 느끼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곧이어 여동생이 부모와 함께 집 안에 일산화탄소를 가득 채워 동반자살을 하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고, 대니는 가족 전체를 한순간에 잃는 상상을 초월한 트라우마에 빠집니다. 이때 이미 대니의 남자친구 크리스천(잭 레이너)은 관계를 정리할 구실을 찾고 있었고, 친구들 앞에서는 대니와의 연애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정작 그녀에게는 명확한 이별을 고하지 못하는 미지근한 태도를 보입니다.
크리스천과 그의 인류학과 친구들(조쉬, 마크)은 스웨덴 출신 동급생 펠레의 초대를 받아, 90년에 한 번 열리는 하르가 공동체의 하지 축제를 연구하러 떠나기로 계획합니다. 크리스천은 대니에게 이 사실을 마지막 순간에서야 털어놓고, 죄책감에 떠밀리듯 “같이 올래?”라고 제안합니다. 대니는 자신이 ‘부담’이 될까 두려워하면서도, 가족을 잃고 정서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이 제안을 붙잡고 여행에 동행합니다. 이렇게 영화 초반부는, 스웨덴의 이국적 공포를 보여주기 전에 이미 “애도되지 못한 상실”과 “무책임한 연인 관계”를 통해 심리적 공포의 기반을 단단히 쌓아 둡니다.
한낮의 햇빛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교도 의식, 공동체의 ‘공감’과 잔혹함
하르가에 도착한 대니 일행은 백야 현상으로 밤에도 어둑한 정도에 불과한 밝은 풍경, 꽃으로 장식된 의상과 흰색 건물, 평화로운 노인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 안도합니다.그러나 이 공동체는 처음부터 이방인들에게 환각 버섯과 음료를 권하고, 외부 문화를 철저히 통제하는 폐쇄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의식 중 하나는, 72세가 된 노인 두 명이 절벽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 ‘애트스투판(ättestupa)’ 장면입니다. 공동체는 이를 “삶의 자연스러운 순환”이라며 박수로 맞이하지만, 외부인들은 트라우마 수준의 충격을 받습니다.
영화의 공포는 대부분 밝은 한낮에 펼쳐지는데, 이는 관습적으로 ‘어둠’을 통해 공포를 연출하던 기존 호러의 문법을 뒤집는 장치입니다. 카메라는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 꽃무늬 의상을 길게 비추면서도, 프레임 구석에 숨겨진 토템·룬 문자·기괴한 벽화 등으로 불길한 기운을 심어 둡니다.[web:21] 하르가 사람들은 대니의 불안 발작과 오열에 “함께 울고 숨을 맞추는” 집단 공감 의식을 보여주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대니에게 처음 경험하는 ‘정서적 지지’처럼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감정을 집단 규범 안에 흡수해 통제하는 무서운 장면으로 기능합니다. 이중성 때문에 관객은 하르가 공동체를 단순한 악당으로만 바라보기 어렵고, 대니가 점차 그 안에서 안정을 느끼는 과정을 이해하면서도 경계하게 됩니다.
메이퀸의 미소와 불타는 곰 탈, 왜곡된 ‘해방’으로 끝난 이별 이야기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대니는 마을의 메이폴 춤 경쟁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메이퀸’으로 선발됩니다. 환각과 환호 속에서 꽃장식 왕관을 쓰고 마을의 중심에 서게 된 대니는, 그동안 주변부에서 감정만 소모하던 ‘눈치 보는 연인’에서 일정한 권력을 가진 ‘선택자’의 위치로 옮겨갑니다. 같은 시기 크리스천은 하르가 소녀 마야의 구애 의식과 약물에 휩쓸려 강제적인 교배 의식에 참여하게 되고, 그 장면을 엿보게 된 대니는 관계의 마지막 잔여마저 무너지는 배신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마지막 의식에서 메이퀸이 된 대니는 “마지막 제물”로 외부인 중 한 명을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곰 가죽을 뒤집어쓴 채 마비된 크리스천과, 추첨으로 뽑힌 하르가 내부 구성원 중 하나 사이에서 대니는 결국 크리스천을 선택합니다. 불타는 노란 사원 안에서 곰 탈을 쓴 크리스천과 다른 희생자들이 산 채로 타 들어가고, 밖에서는 하르가 주민들이 그의 고통을 함께 울부짖으며 ‘공감’합니다. 카메라는 모든 것이 불타 무너지는 가운데, 꽃으로 뒤덮인 대니의 얼굴을 천천히 클로즈업합니다. 처음에는 오열하던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굳고, 마침내 미묘한 미소로 바뀌는 엔딩은, 관객에게 “이것이 해방인가, 또 다른 감옥인가”라는 모순된 감정을 남깁니다.
<미드소마>는 900만 달러 제작비로 북미 약 2,7백만 달러, 전 세계 약 4,7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A24 상위 흥행작 반열에 올랐고,플로렌스 퓨는 여러 비평가 협회에서 2019년 최고의 여우주연 후보·수상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많은 평자들이 이 작품을 “실은 이별 영화이자, 상실과 공존을 다룬 심리 드라마에 컬트 호러의 외피를 씌운 것”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는, 결국 가장 섬뜩한 지점이 피 튀기는 의식 장면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던 한 사람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폭력적인 공동체 안에서 비틀린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