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마지막 비명, 그리고 부성애의 탄생: 히어로의 시대에 바치는 서부극, 영화 <로건>
2017년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한 <로건>은 슈퍼히어로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엑스맨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 울버린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루며, 노쇠하여 능력을 잃어가는 로건이 치매에 걸린 프로페서 X를 돌보며 살아가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우연히 만난 신비한 소녀 로라를 보호하게 되면서, 그들의 마지막 고군분투가 시작됩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영웅적인 활극 대신, 한때 불멸이었던 영웅의 고뇌와 고통,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발견한 희망을 처절하게 그려냅니다. 묵직하고 비장한 분위기, 서부극의 미학을 차용한 연출이 결합되어 기존의 히어로 영화와는 전혀 다른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로건>은 휴 잭맨과 패트릭 스튜어트의 혼신을 다한 연기로 완성된, 완벽한 작별인사입니다.
영웅의 시대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로건>은 기존 히어로 영화가 외면해온 **'죽음'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주인공 로건은 더 이상 불멸의 존재가 아닙니다. 그의 힐링 팩터는 약해져 몸에 난 상처는 아물지 않고, 아다만티움은 오히려 그를 천천히 죽음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한때 인류를 구원했던 영웅은 이제 술에 절어 살아가고, 인류의 수호자였던 프로페서 X는 노쇠하고 치매에 걸려 정신마저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 대신, 영웅의 몰락이 가져오는 고통과 비극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로건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 그의 내면에 드리운 절망과 고독은 관객에게 깊은 연민을 자아냅니다. 영화는 영웅의 마지막을 비장하게 연출함으로써, 그들의 삶 또한 필멸의 존재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는 곧, 영웅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하는 슬픈 고별사와 같습니다.
클론과 돌연변이가 빚어낸 부성애의 탄생
로건의 마지막 여정은 **새로운 인연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는 자신과 똑같은 능력을 가진 소녀 로라를 만나게 되는데, 로라는 단순히 그를 닮은 아이를 넘어, 그의 모든 고통과 분노를 물려받은 존재입니다. 로건은 처음에는 로라를 외면하려 하지만, 그녀를 지키는 과정에서 '아버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평생을 고독한 방랑자로 살아왔던 로건은, 로라와의 관계를 통해 처음으로 타인을 향한 헌신과 책임감을 깨닫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친부녀 관계를 넘어, 상처 입은 두 영혼이 서로를 통해 구원받는 과정입니다. 로건이 마지막 순간에 "아빠"라는 로라의 한 마디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의 고통스러운 삶이 결국 사랑을 위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마블 유니버스를 가로지르는 현대판 서부극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로건>을 통해 **슈퍼히어로 영화에 서부극의 미학**을 완벽하게 이식했습니다. 영화의 배경인 황량한 사막은 고독한 주인공의 내면을 반영하며, 로건의 마지막 임무는 서부극의 전통적인 플롯인 '위험에 처한 무고한 자를 보호하는 영웅의 마지막 여행'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영화 곳곳에는 고전 서부극의 오마주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캠프 장면에서 로건이 로라와 함께 <셰인>을 보는 장면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미리 예견하는 듯한 비장함을 더합니다. 감독은 이처럼 서부극의 문법을 통해 영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환상적인 히어로의 이야기를 현실적이고 깊이 있는 드라마로 탈바꿈시킵니다.
총평
<로건>은 기존 히어로 영화의 모든 관습을 거부하고, 인간의 고통과 나약함을 정면으로 다룬 걸작입니다. 휴 잭맨과 패트릭 스튜어트의 연기는 캐릭터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완성했으며, 이는 장르 영화가 예술적인 깊이를 가질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캐릭터의 끝을 넘어, 히어로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서사로, 오랫동안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