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 가족이라는 피로 이어진 저주, 애리 애스터가 해부한 상속된 트라우마와 악마적 운명
2018년 애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Hereditary)>는 조상 대대로 이어진 정신 질환과 비밀스러운 사이비 신앙이 한 가족을 파괴해 가는 과정을 그려낸 심리·초자연 호러 영화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트라우마·우울·폭력성이 초자연적 ‘악마의 계승’과 겹치며, 가족이란 안전망이 아니라 도망칠 수 없는 저주라는 불편한 메시지를 던져, 1,000만 달러 제작비로 전 세계 약 8,000만~9,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A24 역사상 최다 흥행작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장례식에서 시작된 균열,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애도와 죄책감
영화는 그레이엄 가족의 할머니 엘렌 리(Annie의 어머니) 장례식으로 문을 엽니다. 딸 애니(토니 콜렛)는 조문객 앞에서 “엄마와 나는 평생 멀었다”고 고백하며, 애도라기보다 안도에 가까운 말을 쏟아냅니다. 관객은 첫 장면부터 ‘가족이지만 사랑하지 않았던 관계’라는 이상한 정서를 마주하게 되고, 이 장례식이 이 집안이 감추고 있던 과거 문제들을 다시 끌어올릴 방아쇠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가족 구성원 각각의 반응도 제각각입니다. 남편 스티브는 감정을 억누른 채 실용적인 조치에만 집중하고, 10대 아들 피터는 어색함을 숨기려 애쓰며, 딸 찰리는 장례식장에서도 엘렌 관을 빤히 쳐다보며 알 수 없는 집착을 보입니다. 곧 드러나듯, 엘렌은 어린 시절부터 찰리를 거의 ‘자기 자식처럼’ 키웠고, 가족에게 설명되지 않은 많은 의식과 비밀스러운 모임을 유지해 왔습니다. 애니는 가족 역사 속에 자살·정신분열·우울로 인한 기이한 죽음들이 이어져 왔음을 상담 모임에서 털어놓으며, “이 모든 게 내 잘못 같다(I'm to blame for all of it)”는 죄책감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영화는 초반부터 ‘유전’이라는 단어를 단순한 유전자 수준이 아니라, 정서·질병·비밀·죄책감까지 포괄한 다층적인 개념으로 제시합니다.
딸의 돌이킬 수 없는 사고, 애도 실패와 모녀·모자 관계의 폭발
이야기의 첫 대형 사건은 딸 찰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입니다. 땅콩이 들어간 케이크를 먹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찰리를 병원에 데려가려던 피터가, 공포 속에서 과속을 하다 도로 옆 전봇대에 부딪쳐 찰리의 머리가 잘려 나가는 장면은, 극 중에서도 관객에게도 트라우마로 남는 충격적인 순간입니다. 카메라는 사고 자체보다 사고 직후 피터가 아무 말도 못 한 채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운 모습,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차에서 머리 없는 시신을 발견한 애니의 절규를 들려주며, ‘사고의 공포’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강조합니다.
이 사건 이후 그레이엄 가족의 애도 과정은 사실상 실패합니다. 애니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다, 저녁 식탁에서 폭발해 피터에게 “내가 그날 파티에 널 보내지 않았으면, 네가 딸을 데려가지 않았으면, 모두 달라졌을 것”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피터는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당신이 찰리를 강제로 보내놓고!”라며 반격합니다.이 장면은 피 튀기는 초자연 공포보다 더 잔혹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말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애니의 잠재된 적대감과 피터의 죄책감은 서로를 향해 칼날처럼 쏟아지고, 스티브는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무력감에 빠집니다.이런 감정의 균열 위로, 할머니가 남긴 정체불명의 노트들, 집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낯선 인물들, 벽에 새겨진 난해한 문구들이 겹쳐지면서 ‘초자연적 저주’와 ‘심리적 붕괴’가 분리 불가능한 상태로 엉키기 시작합니다.
애니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상담 모임에서 만난 조안이라는 여인의 권유로 테이블 위령 의식을 시도합니다. 처음에는 진짜로 찰리의 영혼과 연결된 듯한 현상이 벌어지지만, 점차 의식이 거칠어지고 집 안 사물이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공포와 불신 속으로 빠져듭니다. 피터는 학교에서 환각과 발작을 겪으며 자신의 몸에 ‘누군가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고, 애니는 집 다락방에서 발견된 엘렌의 숨겨진 사진과 이상한 제단을 통해, 어머니가 악마 파이몬(Paimon)을 숭배하는 비밀 컬트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그동안 ‘정신 질환’으로 보였던 가족사와, 실제로 세대를 관통해 작동해온 ‘악마 숭배 계획’이 서로 겹쳐져, 무엇이 심리적 문제이고 무엇이 초자연적 개입인지 구분하기 힘든 상태로 몰아갑니다.
피로 이어진 저주와 파이몬 왕의 즉위, 도망칠 수 없는 가족이라는 감옥
클라이맥스에서 애니는 점점 자신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혀, 벽과 천장을 기어 다니며 스스로를 목매다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이 장면은 “정신병으로 무너지는 어머니”라는 현실적인 공포와 “악마 숭배 의식에 조종당하는 인형”이라는 초자연적 공포를 동시에 시각화합니다. 피터는 집 안 곳곳에 놓인 벌거벗은 신도들과 모친·부친의 처참한 시신을 목격한 뒤 2층 창문에서 몸을 던져 죽음을 맞는 듯 보이나, 곧 파이몬의 영혼이 그의 몸에 들어가는 듯한 연출과 함께 숲속 예배당으로 옮겨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나무 집 내부에 세워진 제단과, 왕관을 쓴 피터(이제는 파이몬)가 엘렌의 시체 머리와 찰리의 머리가 놓인 가운데 ‘새로운 왕’으로 추앙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변의 문구와 조안의 독백은, 엘렌이 오랫동안 남자 후손을 악마의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워왔고, 찰리는 그 준비 단계로, 피터는 최종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영화는 ‘유전’이라는 단어를, 단순한 유전병이나 정신질환이 아니라, 조상 세대의 선택·죄책감·비밀·폭력까지 포함한 거대한 저주로 확장합니다.
흥행 면에서 <유전>은 1,000만 달러 안팎의 제작비로 전 세계 8천만~9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A24 배급사 역사상 최고 수준의 글로벌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평단은 특히 토니 콜렛의 연기를 극찬하며, “단순 점프 스케어가 아니라, 슬픔과 죄책감, 가족 내 폭력의 감정이야말로 가장 폭력적인 공포”라고 평가했습니다. 많은 해석 글들이 이 작품을 두고 “악마 영화로 포장된 가족 드라마”라고 부르는 이유는, 결국 진짜 공포의 핵심이 초자연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선택권 없이 물려받는 가족의 역사와 상처,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에게 입히는 감정적 폭력에 있기 때문입니다.